2020년 10월 31일,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 어청도.

어청도는 1914년 일제하의 행정개편으로 옥구군에 편입된 섬으로 김씨와 이씨가 주축을 이루고 그 밖에 각 성들이 고루 살고 있다.
서해의 고도인만큼 물 맑기가 거울과 같다." 하여 어청도라 불렀다. 이 섬에 망명하였던 중국의 전횡장군과 관련한 전설이 있으며, 그와 그의 부하들을 기리는 '치등묘제'가 지내지고 있다. 모심기노래, 뱃노래, 한탄요, 시집살이노래 등의 민요가 전한다.
전라북도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섬으로 군산에서 약 70km 떨어져 있고, 군산항에서 배를타고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어청도항은 U자형으로 움푹 들어가 있어 태풍 때 선박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어청도는 물 맑기가 거울과도 같아 어청도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어청도의 “청”은 맑을 청(淸)이 아닌 푸른 청(靑)자를 쓰고 있다. 그것은 BC 202년경 중국의 한고조(漢高祖)가 초항우(楚項羽)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 후 패왕 항우가 자결하자 재상 전횡이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망명길에 올라 돛단배를 이용하여 서해를 목적지 없이 떠다니던 중 중국을 떠난 지 3개월만에 이 섬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날은 쾌청한 날씨였으나 바다 위에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갑자기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고 한다. 전횡은 이곳에 배를 멈추도록 명령하고 푸른 청 (靑)자를 따서 어청도(於靑島)라 이름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군산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72㎞, 중국 산둥반도와는 약 300Km정도의 거리로서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중국과 가까운 곳에 우리나라 영해기선 기점중 하나인 어청도가 있다. 어청도 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3월에 대륙진출의 야망을 가진 일본의 정략적인 목적에 의해 건설되었고 군산항과 우리나라 서해안의 남북항로를 통항하는 모든 선박들이 이용하는 중요한 등대이다.
등탑은 백색의 원형 콘크리트 구조이며 조형미를 살리기 위하여 등탑 상부를 전통 한옥의 서까래 형상으로 재구성한 보존가치가 있는 등대이기도 하다. 또한 상부 홍색의 등롱과 하얀 페인트를 칠한 등탑, 그리고 돌담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그 모습이 바다와 너무 잘 어우러져 다른 등대보다 그 자태가 더 아름답다. 고도 61m에 위치하여 약 37㎞ 떨어진 바다에까지 그 등광(燈光)을 비추고 있다. 특히 해질녘 등대 주변의 해송과 어우러진 그림같은 풍경은 직접 본 사람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할 정도로 환상적이다.

▼ 연안여객 터미널.

▼ 국제여객 터미널.




▼ 연도.


































▼ 어청도 등대.











































































▼ 어청도 치동묘.
어청도 사람들은 본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고대 중국의 제왕계씨인 전횡(田橫)이라는 장군이 재상에 오르자 한고조가 초항우를 치고 천하를 통일하자(BC. 202년) 패왕 항우가 자결하는 것을 보고 전횡이 망명길에 올랐다.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돛단배를 타고 서해로 목적지 없이 떠난 전횡은 중국을 떠난지 3개월만에 어청도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발견하는 날은 쾌청한 날씨였으나 바다위에 안개가 약간끼어 있는데 갑자기 푸른산 하나가 우뚝 나타나자 전횡을 비롯한 전군사들이 큰 함성을 내며 기쁨에 어쩔줄을 모르는 순간 전횡이 이곳에 배를 멈추도록 명령하고 푸른청 靑자를 따서 어청도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 후 전횡은 싣고 온 식량이 모두 떨어지자 어청도 앞바다를 오가는 군량미를 운반하는 선박을 보면 군사성(軍士城)이라는 산위에 올라가 쇠로 만든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수송선박이 어청도로 대피하도록 하여 군량미를 탈취 식량을 이어나가기를 몇년동안 계속했다. 한고조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반란을 우려한 나머지 사자를 보내어 전횡의 죄를 용서한다는 감언이설로 강제소환함에 전횡은 종자 2명을 거느리고 수도 낙양에 상경하여 가장 행차도중 앞바다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그후부터 살게된 사람들이 백제시대 옥루왕 13년에 치동묘라 이름하여 마을 뒷쪽에 사당을 짓고 주민들은 당산이라 부르며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이면 부락주민이 온갖 정성을 모아 1년간 마을의 재앙을 몰아내고 안위와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는 미신타파라는 신세대에 밀려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전횡사당에는 전횡 초상화가 붙었는데 이 초상화는 치동묘가 세워진 얼마후 공주에 있는 스님이 꿈에 현몽으로 나타나 그길로 어청도를 찾아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초상화가 완성단계에 이르러 한쪽귀만을 그리면 되는데 그리던 도중에 갑자기 붓이 떨어지면서 그만 죽고 말았다. 그후 수년동안 그대로 있다가 어느날 또다른 스님이 나타나 전횡의 초상화를 완성하여 근래에까지도 초상화의 색깔이 변하지 않고 원색에 가까운 채로 보존되었다는데, 현재는 그 초상화의 행방을 알 수 없다. 또한 치동묘의 관리상태도 관심 소홀로 부실하나 앞으로의 특별한 관심속에 유지관리가 요망된다. 출처 : 군산시청 홈페이지


▼ 아파치님이 찍어주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