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은 본래 홍수 때만 섬이 되었지만, 1944년 일제가 청평댐을 건설하면서 북한강 수위가 상승했고 완전한 섬이 되었다. 앞섬이라는 뜻의 남섬(南島)으로도 불렸던 남이섬 지명의 유래는 남이섬 북쪽 언덕의 돌무더기에 조선 초기의 무장인 남이 장군이 묻혀있다는 오랜 민간전승에 기인하여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 천우기행(穿牛紀行) 및 산수심원기(汕水尋源記) 등에 따르면 이러한 민간전승 내용과 함께 일찍이 남이섬을 남이서(南怡嶼)로 부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島(도)가 큰 섬을 가리키는데 반해 嶼(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작은 섬을 뜻한다.
민병도와 민병갈의 友情스토리: 남이섬 유원지의 설립자인 민병도는 1965년 남이섬 조성 초기, 남이장군의 넋을 위로하고 장군의 기상을 기리기 위해 돌무더기 주위에 봉분을 쌓고 추모비를 세웠는데, '노산 이은상'이 추모 글을 짓고 '일중 김충현'이 글씨를 썼다. 남이섬에 있는 것은 허묘(虛墓)로서 남이 장군의 행정상의 진묘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시대 당시 반역죄로 처형당한 경우, 그 후손들이 묘를 만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실제 묘지는 화성군 비봉면 남전리 산 145번에 몰래 만들었고 그 묘를 공식적으로 밝히면, 묘가 훼손되고 경우에 따라 관계자들이 죽음까지 당할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묘를 만들어 본래의 묘지를 지켜내고자 한 것이다.
현대에 와서 남이섬은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1970년대부터 가평군 청평유원지나 춘천 중도유원지 등과 함께 북한강변의 유원지로 각광을 받았는데 특히 1979년부터 1989년까지 MBC 강변가요제가 남이섬에서 열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드라마 겨울연가를 이 섬에서 찍은 덕분에 한류 팬들의 관광지로 유명해졌고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 됐다.
현재는 북쪽의 자라섬과 함께 유이하게 북한강변 하중도 기반 관광자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한 자라섬을 빼면 유일하게 선박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됐다. 원래는 고슴도치섬(위도), 붕어섬, 중도 등도 있었으나 관광지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고 있다. 고슴도치섬은 2000년대에 재개발하려다 실패했고 중도는 기존의 유원지를 밀어버리고 레고랜드 코리아가 들어섰으며 붕어섬은 태양광 발전을 위한 섬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다만, 레고랜드 코리아가 정식으로 개장함에 따라 중도 역시 다시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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